고달픈 시간빈곤의 나라
누구라도 돈과 시간의 적절한 조합이 주는 여유를 누리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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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상해보라. 모든 사람이 25세가 되는 순간 노화가 멈춘다. 팔에 바코드가 새겨지며 1년의 시간이 지급된다. 8분짜리 밥을 사먹고 2분을 내고 버스를 타며 한 달에 10시간짜리 원룸에 산다. 시간이 돈을 대체하는 것이다. 주어진 시간을 모두 써버리면 죽도록 유전자가 설계돼 있다. 부유한 사람들은 영생을 누리지만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를 살기 위해 일을 해서 시간을 벌거나 빌리거나 훔친다. 이것은 영화 ‘인 타임(In Time, 2011)’에 그려진 미래의 모습이다. 영화 속 미래지만 당신의 오늘과 겹쳐진다는 생각이 들지 않는가? 시간은 공기와 같은 듯 다르고 돈과 다른 듯 같다. 누구에게나 숨을 쉬듯 당연하게 하루 24시간이 주어지지만 가진 자의 하루와 가지지 못한 자의 하루는 다르다. 결국 가진 자의 삶과 가지지 못한 자의 삶은 질적으로 다른 것이 된다. 많은 경우 시간을 가진 사람과 돈을 가진 사람은 겹쳐진다. 그리고 그 교집합에 속하지 못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시간을 가지려면 돈을, 돈을 가지려면 시간을 포기해야 한다. 대부분의 한국인은 돈 대신 시간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삶을 꾸려왔다. 그리고 불행해졌다. 2016년 기준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2052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길다. 한국의 삶의 질(Better Life Index)은 조사대상 38개국 중 28위를 기록했다. 특히 일과 삶의 균형 부문에서 한국은 36위를 차지했다. 일과 삶 균형의 판단 기준인 주당 근무시간이 50시간 이상인 노동자 비율이 23.1%로 평균(13%)보다 10%포인트 높았다. OECD는 ‘2018년 한국경제보고서(OECD Economic Surveys: Korea 2018)’에서 한국의 장시간 근로가 삶의 질, 노동생산성, 노동시장 참여율, 출생률 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지적하고 장시간 근로 관행의 개선을 주문했다. 우리나라는 2018년 7월부터 주당 법정근로시간을 68시간에서 52시간(법정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했다. 이에 따라 300인 이상 사업장과 공공기관은 주당 52시간의 근로시간을 지켜야 한다. 일주일은 168시간이니 52시간을 빼면 116시간이 주어진다. 통계청의 2014년 생활시간조사(5년 주기)에 따르면 수면, 식사, 이동 등에 주당 89시간이 쓰인다. 남은 27시간으로 집안일을 하고 가족을 돌보고 여가를 보내야 한다. 생활시간 통계는 주말을 포함하고 10세 이상 국민 전체가 기준이므로 모두에게 27시간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렇게 시간빈곤은 사회구조와 상호작용을 하며 누군가의 희망을 꺾는다. 일반적으로 가사와 돌봄 투입 시간이 많은 여성, 그중에서도 어린 자녀, 장애인, 노인 가구원이 있고 가구 소득이 낮은 경우 시간빈곤에 취약하다. 당연히 이 여성의 배우자는 소득을 최대한 늘리기 위해 장시간 근로를 감내한다. 그렇지만 세상은 녹록지 않다. 야근을 해도 투잡에 쓰리잡을 뛰어도 다 오른다. 2013년 마지막 날 대한민국 역사에 남을 보고서 한 권이 세상에 나왔다. 한국고용정보원과 미국 레비경제연구소(Levy Economics Institute of Bard College)의 공동연구보고서 ‘소득과 시간빈곤 계층을 위한 고용복지정책 수립방안’이 그것이다. 연구진은 장시간 근로로 가사, 돌봄 등 노동력 재생산 시간이 부족해 시장에서 구매할 때 드는 비용을 소득에서 차감해 빈곤선을 책정한 뒤 2008년 기준 한국의 빈곤율을 분석했다. 그 결과 가구주나 그 배우자가 고용상태인 가구의 빈곤율은 7.5%로 당시 공식 빈곤율인 2.6%보다 3배가량 높아졌다. 시간빈곤의 실존이 수치로 확인된 순간이다. 나는 2019년이 ‘시간빈곤 퇴치의 원년’이 되기 바란다. 정부는 주당 법정근로시간 단축 대상을 확대하는 데 머물지 말고 실질적인 시간빈곤까지 관리해야 한다.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의 삶의 질 차이를 줄이는 데 돈과 시간이 함께 고려돼야 한다는 점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개인은 일터에서의 시간이 계약의 매개물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타인의 시간을 방해하는 것은 헌법으로 보장된 재산권 침해행위만큼이나 엄중하며 손해를 배상해야 한다는 의식을 갖추자. 기해년에 태어난 아기가 서른 즈음이 되는 2050년, 영화 ‘인 타임’과 같은 디스토피아에 살게 할 수는 없다. ‘고달픈 시간빈곤의 나라’라는 오명을 씻고 2050년에는 누구라도 돈과 시간의 적절한 조합이 주는 여유를 누리는 새해를 맞이할 수 있다면 좋겠다.
/이채정 국회미래연구원 부연구위원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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