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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절은 백제의 중요한 군사요충지였고, 국경도시였다. 백제의 멸망과 함께 보절의 옛 지명인 거사물이 청웅으로, 청웅이 거령으로, 거령이 보현과 입석으로, 보현과 입석이 보현과 고절로 개명되었고, 최종적으로 보현과 고절이 합쳐져 보절이 탄생했다.” ('역사 속의 만행산과 천황봉'에서)
지난 2015년 10월 마을의 역사적 전통과 뿌리를 찾기 위해 시작되었던 '보절면지'발간위원회(위원장 안한수)의 '보절면지' 편찬 작업이 2020년 12월 출간됐다. 보절면지는 남원시 보절면의 역사, 지리, 인류학적 보고서로 50여 회의 현장사를 통해 몸으로 쓴 살아있는 인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열고 있다. 이번 보절면지 발간은 보절면민 1535명, 출향인 500여 명의 협조와 후원을 통해 완성될 수 있었으며, 면민, 출향인, 지역단체, 남원시 등이 힘을 모아 175백만원의 모금액을 달성하였고 발간비용을 제외한 나머지 잔액은 보절면발전협의회에 전달 될 예정이다. 이 책은 크게 여섯 가지 관점에서 학술적으로 의미 있는 새로운 점을 밝혀냈다. 주요내용은 ▲‘보절’은 663년 3월에 백제를 지키기 위해 거물성에서 장렬하게 전사한 백제 병사들이 묻힌 곳이다. 이와관련해서 백제의 군사 읍성이었던 거사물에 이 지역 일대를 관장하는 현청이 있었다는 주장을 새롭게 제안했다 ▲불교가 대략 130여 년 만에 영광의 법성포에서 천황봉에 있는 귀정사에 정착하게 된 배경과 이를 바탕으로, ‘보절’과 ‘귀정사’가 백제로 이어지는 실크로드의 끝에 있는 지역이라는 점을 새롭게 밝혔다 ▲보절 역사와 이야기를 추적하면서 보절에 살았던 사람들이 남긴 문헌을 새롭게 발굴 ▲유학(儒學) 연구의 관점에서, 보절에서 활동하던 유림이 기본적으로 사림 전통을 계승하였고, 선조 시대를 중심으로 꽃피웠던 성리학의 크고 작은 논쟁에 보절 유림도 적극적으로 참여한 사실을 조명 ▲인류학적인 관점에서, 보절에 성씨 정착과정을 통해 보절에도 이른바 보절판 ‘디아스포라’ 현상이 있었음을 발견 ▲보절 이야기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역사를 밝히는 데 일조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지역학연구, 즉 남원학과 호남학을 연구하는 데 길잡이로 이 책은 학술적 의의가 크다. '보절면지'는 총 9개의 장으로(593페이지) 구성되어 있으며 보절의 명소인 만행산의 천황봉의 역사를 시작으로 마을, 씨족의 유래, 교육, 인물, 명소 등 보절면의 태동부터 현재까지의 발자취를 기록하고 있다. 편찬위원회(집필 : 이현기, 안재원)는 살아있는 역사고증을 위해 30여 회의 현장답사를 실시하였으며, 백제시대로 추정되는 성터를 발견하는 기염을 토했다. 면지발간 기념행사는 추후 코로나19 경과에 따라 개최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며, 총 3,000권이 발행되었고 2021년 1월 6일부터 보절면민, 출향인사, 후원자 등에 배부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