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47회-오래된 생각이다 20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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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5일 이후, 봉하노송의 몸과 마음은 더욱 나빠졌다. 마치 심신에 금이 간 것 같이 건강이 좋지 않다. ‘이명은 심하고, 때론 환청도 들린다. 건강이 좋지 않으니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 아, 내 인생이 결국 이렇게 끝나는 것인가?…’ 봉하노송의 큰형은 1973년 5월 14일, 교통사고로 이승을 떠났다. 그해 초 결혼 한 봉하노송과 봉하부인 사이에서는 아들 호걸이 태어났다. 5월 6일이다. 그런데 여드레 뒤 큰형이 사망했던 것이다. 큰형은 막둥이인 봉하노송을 끔찍하게 아꼈다. 부산대 법대를 졸업했고, 고등고시를 준비했던 큰형은 자신이 못다한 법조인의 꿈을 동생인 봉하노송이 이루길 갈망했다. 제15회 사법시험을 약 두 달 정도 남긴 상황에서 큰형이 타계하자 봉하노송은 절망에 빠졌다. 그런 처지에서 장남을 잃은 부모님의 비탄을 옆에서 지켜봤고, 아직 산고가 풀리지 않은 봉하부인과 신생아인 핏덩이 호걸을 보살폈다. 20대 후반의 봉하노송에겐 참으로 견디기 힘들었던 시기였다. 사법고시 합격은 큰형이 생전에 꾸었던 꿈이자 봉하노송 자신의 꿈이었다. 그 때문에 봉하노송은 약 두 달 앞으로 다가온 사법시험을 포기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책상 앞에 앉았다. 그런데 책을 읽기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답답해졌다. 원인을 알 수 없는 병에 걸린 것이다. 그 이후에도 봉하노송은 그 병에 시달렸다. 책을 손에 잡기만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답답해졌다. 이 때문에 봉하노송은 고시공부를 포기할 생각도 했다. 그 이후에도 그 원인 모를 병은 계속 도졌다. 제16회 사법시험을 볼 때까지 그 증세가 이어졌다.
‘혹시 그 병이 다시 도진 것 아닌가?’ 사흘 전인 지난 19일 밤, 서재에서 책을 읽고 있던 봉하노송은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답답해지는 증상을 느꼈다. 그래서 손에서 책을 내려놓았다. 혹시 예전의 그 원인 모를 병이 다시 도진 것 아닌가싶어 다시 책을 펼쳐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다시 또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답답했다. ‘아 이젠 더 이상 책을 읽을 수도 없고, 글도 쓸 수 없단 말인가?’ 이틀 전인 지난 20일 이른 아침, 봉하노송은 다시 책을 펼쳤다. 역시나 책을 읽으려고 하면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답답해졌다. ‘그 어떤 일이 있어도 완성하고 싶었던 진보의 미래 저술 작업을 이렇게 끝내야 되는 건가? 아, 어쩌다 내 인생이 이렇게…’ 봉하노송은 이렇게 탄식하며 책장을 덮었다. ‘진보의 미래’ 저술 작업은 그렇게 종료됐다. 그날 봉하노송은 사저 비서진에게 더 이상 출근을 하지 말라고 통보했다. 서재에서 책을 읽다가 가슴이 울렁거리고 목이 답답해 손에서 책을 내려놓던 지난 19일 밤, 봉하노송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이제 더 이상 퇴로도 없고, 버틸 힘도 없다면 끝내 23일 토요일 이른 아침에 부엉이 바위에 올라야 된단 말인가?…’ 봉하노송은 이 달 초순, 자살의 방법과 장소를 정해 두었다. 그러면서 서재 탁자 위에 있는 캘린더를 살펴보면서 자살의 시점을 대충 잡아 놓았다. 음력 4월 그믐날이자 토요일인 5월 23일을 택일한 다음, 시각은 먼동이 트기 직전으로 정해두었다. 그 시점을 최종 결정한 것은 사흘 전인 지난 19일 늦은 밤이다. “호걸이 아버지, 내 말 안 들리는교?” 거나하게 술이 취한 봉하부인의 말에 봉하노송이 감고 있던 눈을 번쩍 떴다. 봉하부인과 호걸이 봉하노송의 얼굴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다. “우째 오늘은 세끼 식사도 대충 대충하고, 식탁에 앉아서도 벨 말이 없고, 이 술자리에서도 말수가 적길래 그 이유가 뭐냐고 방금 물었는데 와 대답이 없으신교?”
약간 짜증이 난 듯 한 봉하부인의 질문에 봉하노송은 대답 없이 멋쩍은 웃음을 보였다. “내 오늘 이른 아침부터 당신을 쭉 지켜봤는데에 참 이상한 점이 많데에! 아까 9시 뉴스 나올 때 쯤 미국에 있는 방울이 애미와 방울이랑 통화를 할 때도 그라고, 한국에 있는 호연이와 통화를 할 때도 그라고, 당신 두 눈엔 눈물이 그렁그렁하던데, 머 오랜만에 술을 몇 잔 해서 감정 조절이 안 돼 그랬다고 칩시더! 그란데 오늘 이른 아침부터 밤 11시가 다 되는 지금 이 시간까지 오늘 하루 당신이 보여 준 모습은 팽소하고 분명 다릅니더. 혹시 내하고 호걸이한테도 말해 주지 못할 머 특별한 일이 있는가에?” “내가 오늘 팽소와 다르게 행동을 했다면 그건 아마도 몸 컨디션이 좋지 않아서다. 하지만 분명히 말해 두는데 말 못할 특별한 일은 없다.” 이렇게 대답한 뒤, 봉하노송은 맥주가 조금 남아 있는 술잔을 비웠다. 봉하부인이 봉하노송의 빈 술잔에 맥주를 따르려고 맥주병을 들었다. 봉하노송이 빈 술잔을 들이대자 봉하부인이 훌쩍거리며 맥주를 따랐다. “호걸 아버지, 정말 미안 합니더! 흐윽 흐윽 흐으윽!…” “머가 미안타고 이러노? 그라고 한 밤중에 우는 게 아이다. 제발 청승맞게 눈물 바람 하지 마라!…” 그미에게 “눈물 바람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봉하노송의 목소리는 심하게 떨렸다. “흐윽 흐윽 흐으윽!…여보, 정말 미안합니더!…호걸이 아버지! 흐윽 흐윽 흐윽!…어엉 어엉 엉어어!…” 술에 많이 취해 있는 봉하부인의 울부짖음은 자제시키기 힘들정도다. 그미를 지켜보고 있던 봉하노송과 호걸도 눈물을 훔치기 시작했다. 갑자기 사저 거실이 마치 초상집 분위기로 변해갔다. |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3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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