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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년 10월 탄생한 변산산우회
변산(邊山). 전북 부안군에 있는 명산으로 높이는 508m이고, 최고봉은 의상봉이다.
‘삼국유사’에는 ‘백제 땅에 원래 변산(卞山)이 있으므로 변한(卞韓)이라고 한 것이다.’는 기록이 있다고 한다.
삼한(三韓). 삼국시대 이전 한반도 중남부지방에 있었던 3개 나라를 일컫는다. 마한, 진한, 변한을 함께 모아서 부르는 이름이 삼한이다. 마한은 경기·충청·전라도 지역에, 진한과 변한은 경상도지역에 있었다고 전해온다.
삼국유사의 기록대로라면 백제 땅에 변산이 있어 변한이라는 나라의 이름이 탄생한 셈이다. 그런데 변한은 경상도 지역에 있는 나라였다. 그렇다면 백제 땅인 부안의 변산이 변한의 나라 이름을 정하는데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일까. 의미심장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무튼 변산은 호남의 명산 가운데 하나다. 서해와 인접해 있고 호남평야를 사이에 둔 변산반도라는 지명은 변산에서 탄생했다.
산이면서 바다에 접해 있는 변산. 부안인은 변산을 고향의 산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들 살아갈 것이다.
1978년 10월 21일, 부안인들은 고향의 산 변산의 지명을 따서 ‘변산산우회’를 발족시켰다. 장소는 내소사 입구 전나무 숲이었다. 이 발족식엔 서울에서 20여 명, 부안에서 10여 명 도합 30여 명의 부안인이 참석했다.
변산산우회 창립 멤버
1978년 가을, 내소사 입구 전나무 숲에 모인 30여 명의 부안인들은 미리 준비한 전문 8조의 아주 간단한 규약을 통과시켰다. 그런 다음 임원 선거에 들어갔다.
창립 당시, 회장은 김진배 전 국회의원이, 부회장이자 차기 회장은 이중석 씨가, 또 한 명의 부회장은 이택환 씨가 맡았다. 서울 쪽 총무는 강신영 씨가, 부안의 총무는 신양근 씨가 맡았다.
변산산우회가 창립되던 날, 회원들은 내소사에서 잠을 잤다. 직소폭포, 월명암, 지서리, 개화도 간척지 등을 둘러보았다.
이후 전국 여러 곳에 흩어져 살던 부안인들이 변산산우회에 큰 관심을 가졌다. 전주, 인천, 부산 등지의 부안인들도 변산산우회에 동참했다.
회보 ‘변산산우회보’ 발행
변산산우회는 창립과 함께 ‘변산산우회보’라는 회보를 발행했다. 매달 신입 회원의 명단, 수입과 지출, 다음 달 산행일정 등을 게재했다.
변산산우회가 창립되던 해인 1978년 12월에 발행된 ‘변산산우회보’엔 이런 기록이 남아 있다. ‘조촐하게 그러나 꾸준하게’라는 제목으로 쓴 글이다.
‘벌써 한해가 저물어 갑니다. 단풍 속의 오솔길에서 우리 변산산우들이 정다운 이야기를 나누던 변산도 하얗게 눈에 덮였습니다. 아쉬웠던 일들이나 언짢았던 일들을 훨훨 털어버리고 이제 새해를 향한 힘찬 발걸음을 재촉하겠습니다. 지난 11월의 자연순례는 궂은 날씨 탓으로 많은 회원들이 참가하지는 못했으나 그런대로 알뜰한 모임이 되었습니다. 서울 쪽 친구들은 11월 12일 오전 9시 30분 예정대로 서울 우이동 버스종점에 모여 우이동-백운대-대성문-평창동에 이르는 백운대로 코스 중 12㎞에 이르는 가장 긴 산행을 했습니다. 특히 이날 모임에는 이중석 부회장이 부인과 함께 참석하여 부부등산의 모범을 보였으며…’
이런 글이 실려 있는 ‘변산산우회보’ 1978년 12월호. 이 회보엔 서울 쪽 강신영 총무, 부안 쪽 신양근 총무의 연락처도 적혀 있다. 입회금을 낸 회원들의 명단도 적혀 있다. 당시 입회금은 12,000원이었다.
‘변산산우회보’는 1978년부터 2007년까지 30년 동안 1페이지 또는 2페이지로 발행됐다. 차곡차곡 쌓인 회보가 100호째 되던 때 704페이지짜리 통합본이 나왔다.
‘변산산우회보’의 인쇄·배포작업은 창립 회원이자 훗날 변산산우회의 회장을 역임한 신정인쇄(오늘의 신정프린텍) 김종철 사장이 맡았다.
창립 41주년을 맞은 변산산우회
창립 41주년을 맞은 변산산우회. 산우회 회원들은 자연을 사랑하고 심신을 수련하며 친목 도모와 애향 활동의 실천을 추구한다.
변산산우회는 매월 셋째 주 일요일이면 어김없이 산행에 나선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산행은 무조건 진행된다.
변산산우회는 다른 산악단체와는 크게 다른 세 가지가 특징이 있다.
첫째, 회원은 부안사람이어야 한다. 부안에 사는 사람은 물론 서울에 살든 전주에 살든 부산이나 인천에 살든 관계 없다.
둘째, 꼬박 40년의 역사 가운데 한 번도 돈이나 회장 문제로 구설수에 오르거나 시비를 벌인 적이 없다. 임기 2년을 꼬박꼬박 지켰다.
셋째, 더러 형편에 따라 회의 운영이 조금씩 바뀌었지만 기본 구조는 바뀌지 않았다. 임원은 회장, 총무, 재무, 산악대장 등으로 구성돼 있다.
변산산우회 21대 김보철 회장
변산산우회의 회장 임기는 2년이다. 21대 회장의 임기는 지난 2017년에 시작됐다.
올해 임기를 마치는 21대 회장인 김보철 회장은 부안군 상서면 출신이다. 김 회장은 상서중학교와 부안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중· 고교 시절, 핸드볼 선수였다. 대학 때는 배구선수였고, 군대에서도 배구선수였다.
1980년대 후반, 수방사 30경비단에서 군복무를 마친 김보철 회장은 중소기업에 취업했다. 약 10년간 근무했다. 퇴직 후, 회사를 차렸다. 경기도 수원시 근교에 차린 김 회장의 회사는 식품 포장지 관련 업체다. 테이크아웃용 커피컵 뚜껑을 만들고 있다. 해태, 롯데, 빙그레 등 큰 기업에 납품을 하는 덕분에 판로의 어려움은 겪지 않는다.
2년 동안의 임기를 거의 마친 김보철 회장은 이렇게 말한다.
“변산산우회의 현재 회원은 정회원이 110명, 비회원이 아마 80∼90명쯤 됩니다. 가까운 산행은 괜찮은데 버스라도 대절해서 먼데 산행을 하자면 아무래도 그날 회비만 내고 가는 분도 계신데, 이런 분들을 일컬어 ‘비회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지난 3월엔 서울 변산산우회와 전주 변산산우회가 합동으로 계룡산 산행을 했습니다. 2년의 임기 만료를 코앞에 두고 아쉬움도 있는데요. 우리 변산산우회가 자꾸 늙어 가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러다가 ‘변산노인산악회’란 말을 듣지 않을까 걱정입니다. 젊은 30대 후배들을 영입해야지요. 입회금이나 회비를 조금 받더라도 말입니다.”
변산산우회의 탯자리는 내소사다. 내소사 입구 전나무숲에서 태어난 변산산우회는 올해 창립 41주년을 맞았다. 21대 회장인 김보철 회장의 가장 큰 걱정은 변산산우회의 고령화다. 김 회장은 30∼40대 젊은 후배들의 동행을 갈망한다.
창립 41주년을 맞은 변산산우회. 40여 년의 세월을 견뎌 오면서 어느새 뿌리 깊은 나무가 되었기에 변산산우회는 결코 바람에 흔들리는 일은 없어 보인다. 변산을 고향의 산으로 여기는 부안인들이 존재하는 한 변산산우회는 영원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