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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선생님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3월 25일
교직에서 정년퇴임을 하고 지내다가 봉사활동에 관심을 갖게 되었 다. 예수병원에서 호스피스 자원봉사자로 활동을 하는 것이 인연이 되어 봉사할 바에는 배워 잘하자는 생각에 요양보호사 자격증과 호 스피스완화도우미 자격증을 받아 퇴임 이후 제2의 직장생활을 호스 피스병원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죽음을 앞두고 가시는 분들의 삶이 궁금하기도 하였고 마지막 편안히 가실 수 있도록 돕는 일을 하고 싶 었다. 나름 교육을 열심히 받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적응하며 호스피 스 보조활동인력의 일을 한다는 것이 쉬운 일만은 아니었다. 환자를 돕는 식사보조 및 일상케어에서 기저귀 처리까지 더욱이 일하는 동 료는 모두가 여자들인데 남자 혼자 끼어 일한다는 것 또한 만만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일이 손이 잡히지 아니하여 힘들었고 직장 동료 간 의 관계가 그리 쉽지 않았다. 이 일은 내가 할 일이 아니다 라는 마음의 중대한 결정을 할 즈음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나보다는 한 사이 클 위이신 팔순을 지나고 계셨다. 임파선 암으로 10년 째 투병 중이 신 어른이셨다. 그 분은 내가 입사하기 보름 전 병원에 환자로 들어오 신 분이시다. 남자 중환자실에 계셨는데 내가 남자 보호사이기에 주 로 그 방을 담당하게 되어 함께하는 시간이 많았었다.
키가 크시고 용모가 깔끔하셨다. 전직 공기업 간부로 지내셨다고 하며 천주교 평신도 사목회장의 직분도 맡아 하셨다 한다. 비교적 말 씀이 바르고 치우침이 없이 정확하였다. 보호사 선생님들을 날카롭 고 예리한 지적으로 많이 힘들어하게 하셨다. 나와 세상 돌아가는 이 야기에서부터 삶과 죽음에 문제에까지, 가까이서 다양한 이야기를 많 이 주고받았는데 비교적 죽이 잘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신뢰가 쌓여 오랜 친구와 같이 가까워지게 되었다.
선생은 독실한 천주교 신자이기도 하였지만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었다. 믿는 자들에게는 천국 소망이 있기에 그 곳이 궁금할 따름 이지 두려움은 없으시다 하였다. 그래서 삶과 죽음은 하나이기에 겁 낼 것이 없으며, 자신의 삶 모든 것을 이미 정리하여 가벼운 마음으 로 마지막을 기다린다는 것이었다. 어느 날 저녁에 가까이 오라 하시 더니 한 가지 부탁할 것이 있는데 꼭 들어 달라 하시는 것이었다. 내 가 병원에 입사한 지 4개월이 되었을 즈음인데 몸도 마음도 지쳐 병 원 일을 그만둘까 하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내 손을 꽉 붙잡고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당신 삶의 마지막을 품위 있게 마칠 수 있도록 내가 곁에서 꼭 지켜달라는 말씀이셨다. 너무도 정중하게 부탁 을 하셨기에 거절을 하지 못하고 어정쩡하게 그리하겠노라고 대답을 하였다. 내가 이 일을 그만두게 될지라도 어르신을 보내드리고 난 다 음에 사직서를 내야겠다고 한 것이 차일피일 오늘에 이른 것이다. 어 쨌든 선생님은 그 뒤 당신이 말씀하신대로 흐트러짐이 없이 임종을 조용히 맞이하셨다.
신 선생님이 무엇보다 말기 암인데도 병상생활을 잘 견딜 수 있었 던 것은 임파선 암이 오래되어 여러 곳으로 전이가 되었지만 다행히 통증이 적었기 때문이다. 선생의 삶은 흠잡을 데 없이 그야말로 모범 적으로 살아오신 분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어릴 적 큰 아들로 태어났지만 큰집에 자식이 없어 양아들로 들어가 살았는데 결국에는 본가와 큰집을 다 아울러 거두어야하는 형편이 되었다고 한다. 무거운 짐과 책임으로 어려서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고 살아야 한다는 일념으로 올곧게 자신을 다독이며 살아오셨다고 한다. 어느 날 저녁에는 나에게 대리유언을 하여달라는 부탁까지 하셨 다. 유언은 직접 하시라고 말씀을 드려도 자신이 할 수 없다하시며 막무가내셨다. 사랑하는 아내에게는 남편으로서 다정다감하지 못하 여 따뜻한 포옹이나 사랑한다는 말을 직접 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달 라는 말씀이셨다. 큰 딸에게는 딸이 너무 착하고 발라 부족함이 없 었다는 것과 병상에 있는 아버지를 너무 잘 섬겨주어 고맙다는 이야 기였다. 아들에게는 아직 결혼을 하지 못한 노총각 40대 후반이지만 늦지 않았으니 가정을 갖도록 해달라는 당부 말씀이셨다. 막내딸에 게는 걱정과 염려가 많이 된다하시며 이기적인 마음을 버리고 배려 하는 마음을 갖고 살라는 말씀이셨다. 그것도 한자리에서 말하지 말 고 각각 한 사람씩 전해 달라는 부탁이셨다. 선생께서는 나에게 부탁 을 하신 다음 날 입을 봉하시고 말씀을 하지 못하셨다. 환자는 자신 의 마지막 일정을 아시기라도 하듯 그 뒤 혼수상태에 빠지시더니 일 주일 뒤에 영면하시고 말았다.
선생께서는 본받을 점이 많으신 분이셨다. 첫째는 마지막 가시는 길인 죽음을 두려워하거나 힘들어하지 않으신 분이었다. 초연한 마 음으로 지내시더니 평온하고 온화한 얼굴로 가셨다. 둘째는 자신을 사랑한 분이셨다. 먹고 싶은 것, 하고 싶은 것들을 이루신 분이다. 음 식의 고장에서 잘한다는 만두와 백화점 왕만두며, 진미반점 자장면 과 탕수육을 불러 드셨다. 딸기 등 싱싱한 과일이 먹고 싶다며 배달 을 시켜 드셨고 마지막으로 집에 가고 싶다하시며 엠블런스를 불러 정든 집에 다녀오시기도 하였다. 셋째는 좋은 친구들을 여럿이나 두 신 분이셨다. 지난 날 상관 편백나무 숲에서 만난 암 환자 동료들이 돌아가며 끊임없이 병문안을 하여주었는데 그 가운데에도 지극정성 으로 전복죽을 끓여 섬겨주시던 부안 내소사 입구에서 식당을 하시 는 장애자이신 송 선생님, 그리고 동창생 친구들이 8인조 악단을 구 성하여 병원에 찾아와 특별연주를 하여 주기도 하였다. 넷째는 가족 을 사랑하신 분이셨다. 가정을 더 돌보아야할 가장이 사랑하는 아내와 딸 둘, 아들을 두고 가는 것이 안타깝다고 하셨다. 다섯째는 자신 의 삶을 정리하신 분이셨다. 정신이 흐려지기 전까지는 애써 병상일 기를 쓰셨다. 그 날의 기분이며 아픈 상태, 방문객들까지 꼼꼼히 기 록하시는 것이었다. 그리고 주님과의 대화를 기도문으로 작성하는 것 이 일상이었다.
오랜 남편의 병수발로 인하여 아내가 파킨슨 질환이 깊어져 요양원 에 가 계시다는 소문을 들었는데 잘 계시는지, 부안에서 자주 찾아와 정성껏 보살펴주던 남동생, 대전에서 수녀님으로 계신 막내 여동생이 찾아와 한나절을 기도로 오빠의 건강을 빌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후회 없는 삶을 살아갈 수 있을까? 나름 건 강을 지키며 곱게 늙어갈 것인가? 죽음은 신이 우리 인간에게 준 최 고의 선물이라고 하는데 어떻게 죽음을 맞이할 것인가? 호스피스 병 원에서 마지막을 준비하며 가시는 분들을 지켜보면서 많은 생각에 잠긴다.

/김영진
시인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3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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