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2-5)] 표정 나누기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3월 27일
우리 집 텃밭에는 많은 삶이 오간다. 철 따라 새소리가 오가 고 지렁이에서부터 두더지에 이르기까지 자유롭다. 자유롭게 자란 풀과 나무들 또한 나름의 공간에서 자기들만의 표정으로 삶을 꾸려간다. 지난봄, 햇살을 데려온 벌의 날갯짓에 매화 몽우리 벙글더니 동글동글한 열매를 매달았다. 저렇듯 청청한 모습이 있기까지 는 긴 고독의 뿌리를 감춘 침묵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고, 얼어붙 은 허공을 뚫는 생의 의지가 있었을 터, 마주 보고 서 있는 감나무도 볕을 넉넉히 받아서인지 해낙낙한 모습이다.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의 모습을 보고도 그들의 여정과 삶 을 짐작할 수 있듯 살아온 날을 함축하고 있는 얼굴은 상대에 게 평가받는 잣대가 되기도 한다. 얼굴에 관한 한 정치꾼처럼 변 화무쌍한 사람도 없고 표정 관리를 하는 사람들 중에 사기꾼과 도박꾼만큼 표정을 잘 다스리는 사람도 없는 것 같다. 영화 〈스 팅〉에서 주인공 ‘폴 뉴먼’과 ‘로버트 레드포드’의 능청스러운 연 기는 압권이다. 연기를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승부가 갈린 영화에서처럼 그 렇고 그런 사람들이 표정 관리 잘하여 세상에 클로즈업되면 나 는 이 영화가 생각난다. 대중을 미혹게 하고 상대를 속이는 표 정의 꼼수로 목적을 이룬 사람들을 어떻게 인정해야 할지 가끔 난감할 때가 있다. 사람은 살면서 자기 얼굴에 책임을 질 줄 알아야 한다고 한 다. 하면, 살아가면서 표정 관리만 하다 생의 무대에서 내려오는 일 없도록 가슴을 잘 들여다보며 살아야 할 일이다. 얼굴이란 그 사람의 얼이 배어 있기 때문에 얼굴이다. 얼굴이 곧 마음이고 얼굴은 마음에 따라 표정을 만들어 낸다. 하여, 어떤 옷을 입느 냐에 따라서 표정이 달라지고 행동도 달라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레게 머리를 하거나 힙합 춤을 추는 사람은 그에 맞는 표정 을 한다. 선비는 선비의 표정이 있고 노래하는 사람은 노래 부 를 때의 표정이 있다. 그러니까 이웃을 위하고 국민을 위하겠다 고 나선 정치인들은 걸맞은 맘새를 가져야 한다. 에모토 마사루의 《물은 답을 알고 있다》라는 책에서 말과 음 악에 따라 물의 결정이 달라지는 것을 보여주듯, 말 또한 상대 의 마음을 움직이고 또 하나의 표정을 만들어 낸다. 한 방울의 물이 파문을 일으키는 것처럼 위정자는 한마디의 말도 숙고하 여 마음을 담아야 한다. 진실이 담긴 말, 책임 있는 말이 살 만한 세상 아름다운 표정 을 만들어 내듯이 꽃의 언어로 만들어진 매실이 청청한 표정으 로 화두를 던진다. 텃밭 작은 햇살이 머무는 풀잎, 내가 그의 표 정을 알지 못한다고 하여 미물이라 한다면 그는 나에게 뭐라 할 것인가.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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