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2-6)] 바위, 선생이 되다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3월 27일
우리 집 마당엔 넙데데한 바위가 주인 행세를 하며 누워 있 다. 오래전, 집을 지으려 자드락밭을 파내려 갔을 때 바위가 드 러났다. 중장비를 동원하여 암석을 제거하려 했으나 자기가 살 아온 터전이라며 앙버티는 것인지, 장비마저 무용지물이었다. 어쩔 수 없이 드러난 바위를 피해 집을 지었다. 그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내 재산의 권리를 빼앗아 간 돌덩이와의 신경전은 오랫동안 이어졌다. 벽암록 불조 법계표에 의하면 혜가는 면벽참선 중인 달마를 만난 인연으로 깨우침을 얻어 선불교의 2대조가 되었고, 신약성서의 사울은 다메섹에서 예수님을 만나 바울로 거듭났다. 성현 들의 만남이 이러하니, 나 역시 바위를 성현의 입장으로 흉내 내 보려 했으나 어림없는 수작에 불과했다. 그렇지만 얄팍하게나 마 내 안의 또 다른 나와의 조우는 있었다. 나의 소중한 만남 그 첫째는 바위와 갈등하는 나였다. 두 번 째 만남은 내 안의 나와 화해하는 나였다. 그런 나를 있게 한 것 들은 바위뿐만 아니라 지천에 있었다. 인간을 성숙으로 인도하 는 진짜 선생은 바로 제자 되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다소 역설 적인 말이기도 하다. 하면, 나는 내 안의 선생을 한 번도 찾은 적 이 없는 것 같다. 겸손의 자세가 없이는 내재한 선생을 만날 수 없으리니, 내가 제자 되는 낮음에 이를 때 비로소 주변의 모든 것들은 선생으로 다가올 수 있을 터, 혜가는 중국에서 보기 드 물게 현명한 사람이었지만 무엇인가 채워지지 않음에 괴로워하 다 달마대사를 찾는다. 자신의 한쪽 팔을 자르면서까지 선생으 로부터 가르침을 간구하던 중, 그 집요함에 감동한 달마는 혜가 에게 그토록 괴로워하는 마음을 내어놓으라 한다. 혜가는 마음 을 찾았지만 내놓을 마음이 없다는 것을 알고 크게 깨달았다. 결국 우리는 실체가 없는 마음을 만들기도 하고 노적가리처 럼 쌓기도 한다. 헐어 버리는 것도 내 몫이고, 짊어지는 것도 내 몫이다. 하여, 나는 지금 제자 된 마음으로 바위 선생에게 편지 를 쓴다. 선생님! 무욕무적이라 하던가요. 원망을 내려놓으니 당신이 선생으로 다가옵니다. 수천 년 전부터 이곳에 묵언거를 해 왔을 당신. 백 년도 살지 못하고 사라질 무지렁인 내가 내 땅이라고, 내 것이라고 그동안 눈을 흘겼습니다. 천국과 지옥이 있다면 그 것을 만들어내고, 믿는 사람의 가슴에만 있다는 것을 알아차립 니다. 마음에 들지 모르나 그동안 미안한 마음에 선생 몸 주변에 철쭉으로 단장을 했습니다. 이름하여서 화단이지요. 인제 보니 선생과 잘 어울리는 한 폭의 그림입니다. 전엔 왜 원망하고 미워 했을까요. 어쩌면 보이는 세상은 마음의 눈에 따라 달라지는 것 같습니다. 뒤란 장독대에서 쓸모없이 뒹굴던 돌확을 당신의 가슴에 올 려놓고 수련을 놓았습니다. 수련을 보면서 석가께서 대중을 향 해 들었던 연꽃을 상상해 봅니다. 사변이 끊어져 직관의 눈이 된 가섭은 석가께서 부처가 되고 연꽃이 됨을 보고 미소 지었다지 요. 바위가 선생이 되고, 선생이 바위가 될 수 있다는 생각에 저도 덩달아 미소를 머금어 봅니다. 선생의 번번한 가슴에 안겨 봅니다. 부끄러운 듯 수련은 지그 시 눈을 감고, 달빛은 구름 뒤로 숨네요. 오늘 같은 날, 당신과 마주 앉아 봄 산을 간직한 진달래꽃잎 띄운 차 한잔 마시고 싶 습니다. 당신과 나와 만상이 일체유심조인 듯합니다. 그동안 미 안했습니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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