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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을 문학산책] 맹맹盲盲이와 달달이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09일
ⓒ e-전라매일
참으로 기나긴 여행이었다. 세월의 강나루에 서성이던 날이 어느덧 팔순을 넘어 망구望九를 바라보는 나이가 되었다. 아내와 사랑을 쌓아 온지도 55년! 진정 세월의 무상과 인생의 허무를 느낀다.
우리는 젊은 시절에 직장을 따라 주말부부로 항상 그리움에 가슴 조이며 살아왔다. 안사람은 나와 함께 교단에서 제2세 교육에 봉직해 왔다. 필름 같은 지난날들이 모두 일장춘몽이라 하지만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는다. 험한 산비탈과 끝없는 바다 기슭을 방황하던 고달픔도 삶의 흔적으로 고운 추억이 된다. 어쩌면 추억을 먹고 사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무지개를 잡으려고 희망의 언덕을 달려가던 청춘의 꿈, 푸른 별빛을 찾아가던 이상理想, 영원한 사랑을 불태워 오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수많은 시련의 갈등 속에 인생의 꽃은 시들어간다. 그야말로 허무 그 자체라고 느껴진다.
어느 날 베란다에 진열된 화분과 꽃 이야기를 나누고 있을 때였다.
“여보! 당신 목욕탕 불 꺼요. 바닥 청소도 깨끗이 하고.”
날카로운 목소리가 내 귀를 울렸다. 젊은 시절에 들려오던 다정하고 부드러운 음성이 아니다. 시력도 약해지고 귀도 어두운 나는 매사에 민첩하지 못하고 우둔하다. 이제 나이 들어 눈도 귀도 어두운 맹맹盲盲이가 되었다. 수줍어 조용히 미소 짓던 안사람은 목소리가 커졌고 잔소리가 늘었다. 집안에 혼자 있는 나를 달달 볶는 경우가 많아졌다. 깨소금은 달달 볶아야 고수한 맛이 난다고 했으니 그저 대수롭지 않게 넘어간다. 외모나 성격이 서로 달라 아옹다옹 다투면서 누리고 있는 엇박자 인생이다. 지금은 한 울안에 오직 맹맹이와 달달이 한 쌍이 살아가고 있다.
좁다란 서재에는 내 인생의 등불이 되어 왔던 서적들이 차곡차곡 쌓여있다. 고전을 비롯해서 세계적인 문학작품과 교양서적들이 차분하게 정리되어있다. 한평생 써오는 일기장과 함께 고희를 기념하던 산문집에 이어 근래에 쉬지 않고 발간한 시와 수필집이 진열되어 있다. 지난날 팔순을 기념하는 시선집 〈아득한 별들의 고향〉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문학은 인생의 향불이다. 진리의 강물이요 지혜의 숲이다. 고귀한 영혼의 대화요, 영원한 사랑의 메아리다.
“인생은 끊임없는 전진이다. 고난이 많을수록 내 가슴은 뛴다. 풍파는 오히려 내 인생의 벗”이라고 한 니체의 말이 때때로 가슴을 울린다.
우리는 오직 한 번만의 삶을 위해 어떤 연기를 보여주어야 할 것인가가 마지막 남은 과제라고 여겨진다.
미국 카네기멜론대학 랜디 포시 교수는 췌장암 말기 선고를 받고도 마지막 강의 시간에 “삶을 즐겨라, 절대로 포기하지 말라”고 강조했다.
맹맹이와 달달이는 과연 어떠한 유언을 남겨야 할까? 황혼에 노을빛이 깃들면 맑고 선한 마음으로 “아직도 못다 한 사랑의 노래”를 부르고 싶은 욕망에 잠겨든다.

/서상옥
전주문협 이사, 시인, 수필가.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0년 09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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