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2-7)] 지니펫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4월 17일
볕이 늘어져 있다. 제 주인인 내가 다가가도 반쯤 덮인 눈꺼 풀 걷어낼 줄 모르고 마당에 모로 누워 꼬리만 스릉스릉 흔들 어댄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오가는 꽃철을 바라보며 여유를 즐 기는 녀석을 보면 개 팔자 상팔자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한 조각의 볕도 아쉬운 소만小滿이기는 하지만 빈둥거리는 개 를 탓해서 뭣하랴. 사람이든 짐승이든 그저 팔자소관이라는 말 로 넘길 수밖에. 하지만 무엇이든 지나치면 볼썽사납듯 요즘의 개들은 그 정도가 도를 넘은 것 같다. 그리 멀지 않은 옛날, 개는 마당 한 귀퉁이나 마루 밑에서 주인이 들고나는 것을 바라보며 제 분수대로 살았다. 한밤중 무료 해지면 달을 보고 짖거나, 겨울에는 송이송이 내리는 눈밭을 내 달리면서 주인의 관심을 끌곤 했다. 하지만 요즘의 개는 반려라 는 신분을 넘어 그 대접이 가히 제왕적 수준에 이르렀으니, 그 풍경도 참으로 다양하다. 유행에 편승한 티브이의 동물 관련 프 로그램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개에 대한 깊은 사랑(?)을 끌어낸 다. 그 결과 언제부터인가 너나 할 것 없이 개와 사람이 한 종족 이 되어 엄마, 아빠, 오빠, 누나로 불린다. 심지어 모 방송국 프로 그램에서는 견주를 표기할 때 개 이름을 앞세워 아무개 엄마, 아 무개 아빠라는 자막을 띄우기도 한다. 시청자의 몰입을 유도하 려는 자막의 수용이겠으나 말을 배우고 글을 배우는 아이들과 청소년의 정서를 한 번쯤 생각해볼 일이다. “빨리 와! 엄마, 그냥 간다.” 길을 가다가 딴짓하는 강아지를 두고 이웃의 중년 여자가 하 는 말이다. 서너 걸음 앞서 가면서도 개엄마(?)는 강아지에게서 눈을 떼지 못한다. 그래도 강아지는 흙냄새가 새로운지 연신 킁 킁거리며 신이 나 있다. 줄무늬 옷에 오드리 햅번이 로마의 휴일 에서 썼던 모자와 비슷한 벙거지를 쓰고 질금질금 제 영역을 표 시하며 가는 강아지를 보노라면 웃음이 절로 난다. 몇 년 전 우리 집 지척에 아파트가 들어섰다. 그 앞으로 논길 을 따라 산책로가 이어져 있다. 볕 좋은 날에는 사람들이 그 길 에서 개와 함께 산책을 하곤 한다. 아파트에 사는 한 젊은이도 해 질 녘이면 발음하기도 좀 까다로운 ‘개유모차’를 끌고 어김없 이 나온다. 유모차 안에는 눈이 튀어나올 것 같은, 주먹만 한 강 아지가 로마의 황제처럼 비스듬히 기대고 앉아 제 주인을 종 부 리듯 하며 산책을 즐긴다. 오줌을 누이려 내려놓으면 발에 흙이 묻을까 다리를 털며 유모차만 바라본다. 유모차와 옷, 모자 등 등 얼추 잡아도 수십만 원은 들었음 직한 행차를 보면 사람이 주인인지 개가 주인인지 구별이 잘되지 않는다. 가끔 산책로에서 마주치는 개유모차 주인은 내가 아는 젊은 이다. 어렸을 때 보고 십수 년이 흐른 지금 보아도 곱상하게 생 긴 게 제 아버지를 빼닮았다. 젊은이의 아버지는 선배인데 몇 년 전 지병으로 죽었다. 그 후 선배의 부인은 타지에서 식당일을 하면서 틈틈이 박스를 주우며 살아간다. 가끔 자전거에 폐지를 싣고 가는 모습을 보기도 하지만 나는 그녀의 자존심을 생각해 서 그냥 스쳐 지나간다. 손등의 힘줄이 불거지고 마른 몸이지만 평소 자존심 많은 그녀가 아들의 개유모차 행차를 보면 어떤 표 정을 지을지, 궁금함을 너머 두려운 마음마저 든다. 요즘은 다섯 집 중 한 집꼴로 반려동물을 키운다고 한다. 함 께하려는 의도는 좋지만 소음과 악취 때문에 이웃과 다투고 살 인에까지 이르는 소식을 접하면 안타까움을 넘어 동물의 지위 가 상당하다는 것을 느끼곤 한다. 개 전용 미용실은 그렇다 치 더라도 개 전용 탄산수라든가 스파와 머드팩까지 소용되고, 심 지어 개 유아원과 대신 산책 시켜주는 워킹서비스와 장례식장 까지 등장하였으니 일자리 창출(?) 차원에서는 개도 한몫을 하 는 듯하다. 나아가 개가 입은 옷을 세탁소에 맡기기까지 하는 세태이고 보면 가히 사람보다 나은, 개 팔자 상팔자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강아지의 옷이 수백 벌인 것을 보고 놀 란 적이 있다. 옷걸이에 걸려 있는 드레스를 자랑스럽게 보여주 는 견주의 표정이 행복해 보였다. 물론 개와의 반려로 고독과 외로움을 삭일 수 있다. 또한 치매 환자 같은 경우에는 정서상 좋은 점도 있다. 하지만 평생 부모에게 볼터치 한 번 안하는 사 람이 개와 입맞춤하는 모습을 볼 때 나는 내 마음자리를 더듬어 보게 된다. 인공지능의 영역이 넓어질수록 인간의 정서는 소멸해 갈 수 밖에 없다. 과거, 싸리나무를 엮어 만든 울타리나 헐거운 흙담 은 이웃과의 정을 염두에 둔 열림 같은 것이었다. 이러한 소통의정서는 시멘트 문화가 들어서면서 갇히게 되었다. 얼마 전 끼니 걱정 때문에 동반 음독자살한 세 모녀가 우리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첫새벽을 끌어 빈 박스 하나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의 모 습이 결코 남의 일이 아닌 듯싶다. 마당에 핀 봄 다 지도록 빈둥거리는 우리 집 개가 내 생각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눈 치켜뜨고 쳐다본다. 발바리도 아니고 시쳇말로 똥개도 아닌, 종을 알 수 없는 저 녀석은 나와 함께 산 지 어언 십 년이 훌쩍 넘었다. 사람으로 치면 요단강을 눈앞에 둔 늙은이다. 그래도 낯선 사람이 오면 힘에 부친 짖음일지언정 짖어대며 주인에게 알린다. 목줄을 풀어주어도 다시 돌아와 마 당에 앉는 녀석은 내가 외식하고 돌아오면 무슨 음식을 먹었는 지 훤히 꿰뚫는다. 어쩌다 삼겹살에 소주잔을 걸치고 귀가한 날 에는 혹시 고깃점이라도 남겨 오지 않았는지 나를 뚫어져라 쳐 다본다. 요즘 뜨고 있는 홍삼이 함유된 지니펫은 아닐지라도 먹 고 남긴 음식을 가져다주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서로를 신뢰하 고 아낀다. 얼마 전 6년근 홍삼으로 만든 ‘정관장 지니펫’이라는 개 건강 식품이 날개 돋친 듯 팔린다는 말을 들었다. 사람인 나도 지금 껏 먹어보지 못한 홍삼 제품을, 그것도 6년 근을 개가 먹는다고하니 어쩐지 내 처지가 처량하기만 하다. 거기에 더하여 값이 비 싸 망설여지는 유기농 제품까지 개를 위해 시판되고 있는 시절 이고 보면, 먹고 입는 것에 관한 한 나는 분명 개보다 못한 것 같 다. 마당에서 뒹굴던 똥개가 갑자기 귀를 세우더니 벌떡 일어선 다. 동구 쪽을 바라보며 목청껏 짖는다. 멀리, 개장수 확성기 소 리가 가까워지는 한나절이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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