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34회-오래된 생각이다 7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31일
팔짱을 푼 유정상이 소파에서 일어났다. 시어진 눈으로 봉하노송이 물었다.
“니 지금 어딜 갈라꼬 인나노?”
눈 둘 곳을 몰라 얼굴이 벌겋게 상기 된 유정상이 발걸음을 뗐다. 봉하노송이 소파에서 벌떡 일어났다.
“퍼뜩 자리에 앉아라! 니 정말 내 속을 새까맣게 태워서 죽일 작정이노?”
봉하노송이 호통을 쳤다. 목청이 얼마나 큰지 거실이 쩌렁쩌렁 울렸다. 유정상은 맞대꾸 없이 내실 쪽으로 향했다.
“내실에 있는 집사람을 데리고 나올라카나?”
다시 또 봉하노송이 호통을 쳤다.
“우리 둘이 얘길 나누면 되지 와 집사람은 끌어 들일라카노?”
봉하노송이 다시 또 거실 천장이 내려 않을 정도로 고성을 내질렀지만 유정상은 관심 밖인 듯 했다. 유정상은 벌써 내실의 문턱에 한 발을 걸쳤다. 봉하노송은 할 말을 잃고 발만 동동 굴렸다.
유정상은 반쯤 열려 있는 내실의 방문을 닫고 뒤돌아섰다. 그러더니 방금 전 앉아 있던 소파로 되돌아왔다. 유정상이 자리에 앉자 봉하노송도 따라 앉았다.
“노송, 부탁이 있다.”
“무슨 부탁인지 퍼뜩 말해 봐라!”
“내 보기에 니는 지금 머리꼭지가 돌아 있다. 그럴 수 밖에 없다고 내도 생각한다. 그러나 오늘부터 니와 내가, 그라고 봉하부인이 대응해야 될 일은 결코 감정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일이 아이다.…”
유정상의 말에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봉하노송의 눈엔 모가 서있다.
“그래 내가 부탁하고 싶은 말은 다름이 아이다. 지금부터 내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핑퐁게임을 하듯 맞대꾸 하지 말라는 거다. 내가 하는 말을 되도록 귀 담아 듣고 하고 싶은 말이 있더라도 입안에서 두 번 세 번 곱씹은 다음에 내뱉었으면 좋겠다.”
유정상의 부탁에 봉하노송은 힘을 주어 입을 꽉 다물었다. 봉하노송처럼 유정상의 눈에도 모가 섰다.
“니는 기억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만 지난 2002년 대선 때 내는 니 대통령 당선시킬려고 무던히 애를 썼다.…” 유정상이 2002년 대선 이야기를 꺼내자 봉하노송은 귀를 더 쫑긋 세웠다.
“2002년 12월 19일, 그 날 대선이 있었제? 그 날 초저녁부터 개표 결과를 지켜보면서 내와 내 집사람은 애간장이 탔다. 그 날 밤 자정이 훨씬 지난 뒤, 니 대통령 당선이 거의 확실해 지는 순간, 우리 부부는 얼싸안고 한참을 울었다. 얼마나 기쁘고 흥분이 되는지 그날 밤 우리 부부는 한 숨도 못 잤다.…”
봉하노송은 눈을 크게 떴다.
“근데 참 묘한 일이 벌어졌다. 니 대통령 당선을 그토록 축하하고 반겼는데, 대선 다음날부터 내 가슴 속엔 니에 대한 서운함이 하루하루 쌓여갔다.”
봉하노송은 처음 듣는 소리였다. 그래서 그는 이유가 무엇이냐고 묻고 싶었지만 참았다. 핑퐁게임을 하듯 맞대꾸를 하지 말라는 유정상의 부탁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내 마음 속에 니에 대한 서운함이 그렇게 쌓인 이유는 다름 아이다. 니가 대통령 당선된 직후, 니는 내게 전화 한 통 없었다. 가까운 친구 사이라면 대통령 당선 직후, 고맙다는 전화 한 통은 했어야 맞지 않겠나?…”
봉하노송은 억지로 웃었다. 쌉쌀한 웃음이었다.
“물론 이해를 못했던 것은 아이다. 대통령에 당선 된 뒤 얼마나 할 일이 많고, 당선사례를 할 사람이 좀 많았겠나. 그래 내는 하루에도 수십 번 씩 마음속에 쌓여가는 서운함을 한겨울에 말이다. 마당이나 골목에 소복소복 쌓이는 눈을 치우는 것 맨치로 쓸어내고 또 쓸어냈다.…”
봉하노송의 눈동자는 다시 또 눈썹에 걸렸다. 그가 당장 듣고 싶은 말은 봉하부인이 박차대 회장의 돈을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의 여부다. 그래서 그의 머리꼭지가 돌아 있는데, 유정상은 케케묵은 얘기를 늘어 놓고 있는 것이다.
“대통령 당선 된 뒤, 한 달쯤 지났을 때 니는 내게 전화를 해서 며칠 뒤 청와대서 보자고 했다. 그래서 난 서운했던 감정을 모두 지우고 청와대에 들어갔다. 그 때 니는 날 반갑게 맞아 주었다. 그런데 내겐 불만이 하나 또 생겼다.…”
봉하노송은 유정상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내는 대통령 당선자인 니를 대통령 당선자님이라고 호칭하며 예우를 지키려고 노력했다. 그런데 니는 그랬다. 무슨 소리를 하느냐며 친구끼리 남사스럽게 그러지 말고 편하게 평소처럼 서로 이름을 부르자고 했다.…”
봉하노송은 웃었다. 당시의 기억이 생생하게 나는지 실없이 웃었다.
“아무튼 그 날 이후, 니에 대한 서운함을 말끔히 해소됐다. 그라고 내는 니를 공식석상에서는 대통령님이라 호칭했지만 사석에서는 서로 이름을 부르면서 지냈다. 그렇지만 내는 니를 친구가 아닌 나랏님으로, 대통령님으로 모시려고 애를 썼다.…”
봉하노송은 눈과 귀를 한껏 열고 유정상의 말을 귀담아 들었다.
“2003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로 청와대 총무비서관 장진술이낙마하자 니는 내를 그 자리에 앉혔다. 정말 파격적인 인사였다. 니 덕분에 내는 4급인 서울시 감사담당관으로 있다가 엉겁결에 1급인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됐다. 이후 내는 니와 참여정부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겠다고 각오했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만약 내가 목을 내놓아야 될 상황이 온다면 목숨을 바칠 각오도 했다.…”
봉하노송의 입은 여전히 굳게 닫혀 있다.
“니가 알았다면 화를 내고 뜯어 말렸겠지만 내는 참여정부 후반기에 니 퇴임 이후까지 준비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유정상의 말이 이 대목에 이르자 봉하노송은 드디어 떨리는 입술을 뗐다. (계속) |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9년 01월 3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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